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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_ 2017)

by 저녁그림자 2021. 7. 8.
내가 왜 이 나무를 좋아하는지 알아?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거든.

너무 예쁜 핑크보라색 집,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초록 나무, 선명한 무지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던 아이의 귀여운 수상 소감까지 더해져 뽀송뽀송 예쁜 동화 같은 이야기인 줄 알고 가볍게 보기 시작했다. Future Land, Magic Castle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Next Signal을 따라가면 Seven Dwarfts가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Future도 Magic도 먼 이야기이든 Next Signal은 보이지 않고 일곱 난장이도 없다.

이 예쁜 영화는 많은 질문들을 남겼다.

 

예쁜 포스터

1. 사랑만으로 괜찮은가

아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걸까.

핼리가 무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무니가 엄마와 함께 하는 삶을 행복해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 아이가 욕조에 있는 동안 매춘을 하거나,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호객행위를 하고 사기를 치는 것을 학대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핼리가 직장에서 해고당하지 않았거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금방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면 상황을 조금 나아졌을까?

조금은 나아졌겠지만, 그러니까 최소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기를 치는 일이나 집에서 매춘을 하는 일은 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학교도 가지 않고, 적절한 교육도 받지 못하며, 당장이라도 쫓겨날지 모를 불안정한 거주지에서 아무렇게나 침을 뱉으며 살고 있는 무니의 환경이 나아질 가능성이 핼리의 태도에선 보이지 않는다.

 

2. 어디부터 학대일까

부모의 자격에 무엇을 필수적으로 포함시켜야 하고 무엇은 조금 모자라도 되는 걸까?

경제적 어려움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그러니까 핼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그것이 누구의 잘못으로 비롯된 일인지는 논외로 하고) 일단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어쨌든 해결해보려는 노력도 하고 있고 아이를 굶기거나 때리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늘 즐거워 보이고 함께 있을 때는 줄곧 밝게 웃는다.

그런데 그 즐거움에 자꾸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기본적인 도덕 교육이 되지 않은 아이, 구걸하고, 욕하고, 침을 뱉고, 그런 일들에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 그들이 행복해 보일수록 마음이 복잡해진다.

본인의 인성이 덜 성숙해 아이의 인성 교육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그것 자체는 학대(방임, 유기)일까..

아마 핼리도 좋은 환경에서 자라진 않았을 것이고, 그냥 사랑은 충만하지만 자질이 부족한 엄마인 것은 학대일까.

 

3. 우리에겐 어떤 권리가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엄마와 아이를 강제로 분리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 권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근거로 정당화되는 걸까?

아동복지국에서 아이를 데려가려 할 때, 아이는 당연히 소리지르고 분노하고 달아난다. 아이는 알지 못한다. 엄마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왜 떨어져야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우리는 안다. 마냥 해맑고 밝았던 장난꾸러니 무니가 핼리와 강제로 분리되어 위탁가정으로 보내졌을 때 아마도 더이상 같은 모습은 아닐 거라는 것을.

아이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에게 사랑받으며 적어도 늘 즐겁게 지냈으므로, 아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 엄마와 강제로 떨어져야 했는지..

 

애들 너무 예쁘다. 연기도 잘하고.

4. 아이들은 계속 자란다.

아이들은 계속 자란다. 무니와 잰시가 걸터앉아 빵에 잼을 발라 먹던 쓰러진 나무처럼.

아이들은 쓰러진 상태에서도 자란다. 자기가 쓰러져 있는지도 모르는 채, 쓰러진 방향 그대로, 쓰러져 있는 상태로 자라 쓰러진 어른이 된다. 작은 나무일 때는 일으켜 세워줄 수 있지만 쓰러진 채 자라서 거대해져 버리면 세상은 아마도 그 나무를 치우기 위해 전기톱을 들이댈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아직 작을 때 일으켜 세워 똑바로 자라도록 해 주는 것이 의무일지도 모르겠다.

쓰러진 채로도 계속 자란다는 것이 조금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말없고 소심했던 잰시는 무니와 어울리며 테이블 위에 올라가 비행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가 되어간다. 애슐리는 스쿠티가 오래된 콘도에 불을 지른 게 무니 때문인 것을 안다. 무니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엄마에게, 죄를 지어도 웃어넘기고 즐거워하는 엄마에게, 배운(혹은 받은) 영향을 고스란히 주변에 발산하고 있다. 밝고 예쁘고 사교성 좋은 아이의 영향력은 파급력이 크다.

그게 '그래도 아이가 행복하니까 그걸로 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고, 어쩌면 핼리도 무니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유이고, 무니가 또다른 무니들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손길을 주어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으켜 세워 주려는 노력이 다른 방향으로 어쩌면 더 나쁜 방향으로 다시 쓰러트리는 일이 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건 핼리를 구하는 것이겠지만, 핼리는 이미 쓰러진 채 다 자라버린 나무일지도 모르겠다.  적절한 선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쓰러진 나무가 무니와 잰시 같은 아이들에게 걸어앉을 그루터기가 되어줄 수도 있는 것처럼, 나무는 똑바로만 자라야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아이들은 마지막에 디즈니월드로 도망친다. 현실을 떠나 환상의 세계로..

현실은, 넘을 수 없는 벽. 희망은 환상 속에서 존재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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