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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스스피치 (King's Speech_ 2010)

by 저녁그림자 2021. 7. 9.
감독: 톰 후퍼
주연: 콜린 퍼스(조지6세), 제프리 러쉬(라이오넬 로그), 헬레나 본햄 카터
Because I have a voice.
...Yes, you do!

 

장수의 상징, 엘리자베스 현 영국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무려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작품상을 받았으니 주요부문을 싹쓸이한 것이라고 봐도 되겠다.(남우주연상을 빼면 기생충과 겹친다) 아무튼, 이것은 훌륭한 감독이 좋은 각본으로 뛰어난 배우와 만든 걸출한 작품이라는 것을 아카데미가 인정했다는 뜻이겠다.

포스터. 아카데미 전 포스터인가 보다.

진짜 그런가? 우선 좋은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에 나오는 주요인물들의 연기는 모두 뛰어나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콜린 퍼스는 말할 것도 없고, 카메오 느낌이 났던 윈스턴 처칠 역할의 배우가 조금 튀긴 했지만, 커다란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이야기 속에서 그 누구 하나 오버하지 않고 극에 녹아든 연기를 보여 준다. 당연히 콜린 퍼스의 연기는 상을 받을만 하다. 그토록 자연스러운 말더듬 연기라니.. 두 번 받아도 이의없다.

'커다란 사건 없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시대는 너무나 커다란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터지던 때였다. 히틀러와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그리고 전쟁을 코앞에 둔 긴박한 세계 정세(영화 마지막의 감동적인 연설은 무려 전쟁을 선포하는 연설이다.), 그 와중에 세기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왕위를 내팽개친 형까지. 영화는 그런 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배경으로 처리하고 '버티'의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집중한다. 각본의 훌륭함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개인'인 것이다. 히틀러의 연설 장면을 보고 '뭐라는지 몰라도 청산유수'라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형에게 불만이 있으면서도 그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어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프라모델 조립을 해보려고 노래를 부르더니 급기야 어릴적 왼손잡이와 안짱다리를 강압적으로 교정당한 것, 유모에게 학대받았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의 말더듬 증상은 그런 '압박'들에서 비롯되었고 사사건건 훌륭한 형과 비교당하며 굳어졌고 자신의 위치에서 '말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인지할 때마다 심해졌다. 각본은 '버티'의 개인사에 집중하여 '왕'을 하나의 '인간'으로 보게 만든다.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부족한 점은 있고, 누구에게나 컴플렉스는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복잡한 시술보다도 그 마음을 알아주고 쓰다듬어줄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라이오넬 로그'가 '그 사람'의 역할을 맡았다.

 

상대가 왕자든 무엇이든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 동등한 관계가 될 것을 요구하며 거리낌없이 '버티'라고 부르는 남자, 호주 출신의 학위도 학벌도 없는 언어치료사 로그는 누구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버티에게 가능성을 보여준다. 들리지 않으면 더듬지 않는다, 그건 타고난 게 아니다. 로그가 버티에게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은 아마도 '권위를 내려놓으라'는 명령이 아니라 '내가 네 친구가 되어줄게.'라는 제안이었을 것인데, 영화의 마지막에서 연설을 마친 왕은 그에게 'My friend' 라는 호칭으로 그 제안을 드디어 받아들이고, 로그는 'Your Majesty'라 화답하며 왕의 권위를 인정한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인사하러 나서는 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로그의 얼굴에는 '자신의 소임을 다한 자'의 표정이 떠오른다. 뿌듯하면서 벅차기도 하고 이유를 모르게 조금 쓸쓸하고 슬픈 듯도 한 그 표정이 이 영화에서 제프리 러쉬 연기의 정점이다.

영화 마지막 연설 전, 주인공 3인. 결연한 왕과 걱정스런 로그, 알쏭달쏭 왕비, 그리고 시선 강탈하는 엑스트라.

그리고 이 감동적인 장면에 빠질 수 없는 퀸 엘리자베스가 있다. 영화 내내 한 번도 로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그녀는 드디어 '라이오넬'이라고 그를 부른다. 그건 어쩌면 'King's Speech'를 함께 만들어간 사람들의 동지애 같은 느낌이기도 한데 남자들의 이야기에 함몰되어 잊고 넘어가기 쉽지만, 왕의 옆에서 포기하지 않고 그의 Speech를 완성시킨 것은 로그 혼자만의 공이 절대 아니다. 알 수 없는 골목길의 낡은 집을 직접 찾아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며, '멋지게 말을 더듬어서 당신과 결혼했다'고 말할 줄 아는 그녀의 공을 빼고는 이 이야기는 완성될 수 없다. 조지 6세는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왕이었다. 물론 왕비 엘리자베스는 전쟁 중 적장에게서도 인정받는 훌륭한 여인이었고.

그리고 로그는 생이 다하는 날까지 이들의 친구였다고 한다. 완벽하게 닫힌 Happy Ending이다.

 

 

왕관을 쓰기 전에 진심으로 고사하는 사람이 좋다. 좋다기보다는 그런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다. 저 사람은 저 왕관의 무게를 아는구나, 하는.

겁없이 덤벼드는 사람보다 왕관의 무게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이 더 훌륭한 왕이 될 거라는 믿음. 무거운 것을 무겁게 느낄 줄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믿음. 연설의 무게를 느낄 때마다 심하게 말을 더듬던 조지6세는 이미 훌륭한 왕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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