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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 교황 (The Two Popes. 2019)

by 저녁그림자 2021. 7. 6.
타협한 것이 아니라 변한 것입니다.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주연: 안소니 홉킨스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 조나단 프라이스 (교황 프란치스코 역)

1. 콘클라베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를 '콘클라베'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흰 연기가 나오면 새 교황이 선출된 것이고, 검은 연기가 나오면 투표가 무위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투표를 하고 77표 이상을 얻어야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 사후 15일 이내에 투표를 해야 하며, 선대 교황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새 교황이 선출된 것은 역사상 단 2번뿐이다. 그중 한 번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를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니, 서로가 서로를 Pope라고 부르는 전례 없는 사건이 일어났고, 바로 그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두 교황은 친구가 되었고, 함께 축구를 즐기는 사이다.

 

함께 축구를 보며 각자의 나라를 응원하는 두 교황

2. 장면들

종교가 없고, 앞으로도 가질 생각이 없고, 종교가 생활 깊숙히 구석구석 영향을 끼치는 나라에서 나고 자라지도 않은 입장에서는 조금 생경한 장면들이 많다. 역사적 지식의 파편이 너무 조각난 파편이어서 그저 신으로부터 직접 받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 왕도 갈아치울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뉴스에서 본 군중들의 얼굴이 또렷이 떠오르는데도 여전히. 그냥 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던 그때 그 얼굴들이 영화 속 교황청 앞에 구름떼같이 모여들어 흰 연기에 환호성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아, 그들에게 교황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3. 불편한 아름다움.

두 교황의 우정은 아름답다. 그렇게 그려진다.

'보수'를 대표하는 베네딕토 16세와 '개혁'을 대표하는 프란치스코의 반목과 대립과 화해와 우정,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 뒤에 베네딕토가 묻어버린 범죄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비서'는 잡혀 들어갔고, 본인은 교황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으니 된 건가? 결국 베네딕토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을 뿐이지 않나? 프란치스코에게 고해를 하고 프란치스코는 그의 죄를 '사하여' 준다. 베네딕토는 '내 어깨에서 큰 짐을 들어가 주셨다'며 감사한다. 종교에 대한 반감이 커진 이유 중 하나인데 왜,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자기들끼리 용서하고 마음이 편해지냐는 것이다. 피해자는 어디에 있는가? 정작 사죄를 받고 용서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은 쏙 빼놓은 채 모든 일이 끝난 척하는가. 그리고 그게 왜 이토록 아름다운 장면을 그려져야 하는가.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베네딕토는 그 자리에서 내려올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수습하고 사죄했어야 한다. 교회의 잘못을 시인하고 관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도 바로 그 자리에서.

 

4. 그래도..

'리더가 되기 위한 최고의 자질은 리더가 되기 싫어하는 것' 플라톤이 말했다.(고 영화에서 말했다.)

프란치스코를 더 훌륭한 리더로 보이도록 만든 장치가 된 이 말은 내가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한데, 플라톤이 했던 말이라는 건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플라톤이라니, 이것도 생소하다.

 

제가 막았던 그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그 잘못이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면 더더욱. 사제들을 지키기 위해 독재자와 손잡았던 프란치스코는 교황이 된 이후에도 그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종교에 관심 없는 나도 그 당시 떠들썩한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날 정도이니, 작은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배운 바를 실천하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자신의 막았던 바로 그 길을 가려는 결심에 박수를 쳐 주어야 하는 이유다. 잘못된 과거를 몽땅 덮을 수는 없고, 그래서 그는 어떤 사제에게는 용서받았고 어떤 사제에게는 죽을 때까지 끝내 용서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다. 사제이기 전에 인간이므로.. 누군가는 용서하고 누군가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용서받았다고 마음이 편해지지도, 용서받지 못했다고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의 그릇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모두의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죄를 회피할 생각이 없음을 말하는 것. 현직 교황을 최대한 훌륭하게 그리고 싶어했던 감독의 작전이었다면 그는 성공했다.

 

종교가 없고, 앞으로도 가질 생각이 없는 사람의 눈으로도 이 영화는 아주 매력있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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