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코즈, 위 아 그레이트!
감독: 이종필
주연: 고아성(이자영 역), 이솜(정유나 역), 박혜수(신보람 역)
현실일까, 희망일까.
대단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대단히 비현실적인 스토리.
네이버 평점이 특별히 믿을만하지 않을 때가 너무나 많지만, 그래도 9점이 넘는 영화를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또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별 관심도 없었던 영화를 돈을 주고 대여를 하게 된 것이고.
구매가 아닌 대여였던 건 어쩌면 처음부터 2번 볼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예감했기 때문이겠다.
아마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또래의 나이에서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된다.
희망이 있는 직장생활을 꿈꾸는 나이, 나도 그 나이때는 그랬었을 것이다.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회장의 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개차반이어도, '회장님'은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고, 회사 말단 '여'직원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어른이고, 피해를 끼친 주민들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 같은 것.
다른 모든 사람이 '여자애, 아가씨'라고 불러도 꼬박꼬박 '보람씨'라고 '씨' 자까지 붙여 이름을 불러주며, 세상이 규정한대로 세상을 보지 말라고, 재미있는 것을 하라고 조언해 줄 진짜 어른, 어버이 같은 상사가 어쨌든 '존재는' 하는 회사이길 바라는 마음 것.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스토리엔 6점
1995년에 회사를 (특히나 대기업에 상고 출신 여직원으로)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현실적이라고 평가할까, 허무맹랑하다고 평가할까? 그 시기에 회사를 다녀보지 않았으니 나도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마지막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큰 사건이 마무리되는 방식도 그렇지만, 그 이후에 보여지는 주인공들의 일상들은 더 그렇다. 그 시절에 다닌 건 아니지만 아주 오래 회사 생활을 해본 바로는.
상고 출신의 커피 타던 여직원들을 토익 점수만으로 대리로 승진시켜 줄 수는 있다. 이건 오히려 지금은 말도 안 되지만 그때는 가능했던 일이다. 대외적으로는 과시용으로 보여주기 좋고, 내부적으로는 충성심과 사기 진작용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한데, 그렇게 승진한 이들을 다른 사람들이 진짜 '대리님'으로 인정한다는 게 과연, 영화처럼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새로운 회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회사 시스템으로 도입하고, 팀 대표로 마케팅 브리핑을 하고, 채택된 아이디어로 주도적으로 제작을 맡은 주인공 3인의 마지막은 물론 매우 뿌듯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제까지 유니폼을 입고 아침이면 내 커피를 타오고 점심에는 내 구두를 닦아 오던 사람, 회의실에서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내가 먹을 햄버거를 세팅하던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닌 그냥 토익 점수 하나로 겨우 '대리'라는 직함 하나 달았다고 그렇게 신분이 바로 수직상승 되지는 않는다. 직함은 그저 직함일 뿐.. 현실에서는 '대리'라는 직함을 단 여전한 심부름꾼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들이 위기에 빠질 뻔한 회사를 구해냈어도 달라질 건 없다.
게다가 '여'직원들이지 않는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직원들에게만 유니폼을 입히는 회사가 존재하는 판국에.
그 마음에는 9점
희망이 필요한 시기에, 이 영화에 평점 9점이 달렸다는 건 그것이 바로 '희망'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회사를 구했으니 존중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할 거라고, 아니 그런 사람이 대다수고 극중 조민정 대리 같은 사람이 특이한 케이스라고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우리 대부분은 이미 알지 않는가. 그런 방식으로 '대리' 직함을 달고 '진짜 일'이라는 걸 해보겠다고 나서는 순간 그때부터 제대로 지옥문이 열릴 수도 있다는 걸. 그냥 직급이나 달고 조금 오른 월급에 만족하며 '진짜 일'에는 욕심내지 않고 늘 하던대로 커피 타고 청소하고 서류 복사나 하면서 결혼해서 반강제로 퇴사를 당할 때까지 탈없이 지내면 그거야말로 현실에서의 해피엔딩일 수도 있다는 걸 숱하게 보면서 살지 않았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며 거리로 나선 사람들은 더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사장, 회장들만 기득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밥그릇 싸움은 일상에서 수시로 벌어진다. 누군가의 밥그릇이 커지는 것을 볼 때 의외로 사람들은 참지 못한다. 그 누군가가 내 밥그릇을 탐하는 것이 아닐 때조차도 그렇다.
누군가가 무임승차한다고 느껴지는 순간,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위치로 올라서려는 순간, 아주 평범하고 선했던 사람도 순식간에 얼굴을 달리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봉현철 부장 같은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의 평점이 그렇게 높은 건지도 모른다. 희망이 필요하니까.
우리는 모두 위대하다는 믿음, 그래서 불가능은 없다는 믿음, 그러니까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남이 아니라 그런 '나'를 보라는 계시, 지금 시기에 필요한 메시지들을 그득그득 담아놓았으므로..
공감보다는 희망에 준 점수라고 해야겠다.
캐릭터에 9점
영화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이 매우 매력적이라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아성은 연기를 참 예쁘게 한다. '으~ 외롭다 외로워~' 할 때 너무 귀여웠다.
역동적이면서 동시에 정적이고 재수가 없기도 했다가 어딘가 멍청해보이기도 하는 묘한 매력이 있던 최동수 대리, 고아성한테 등짝을 후드려 맞을 때 아주 통쾌했다. 뻔한 전개가 아니라서.
까탈스럽지만 일처리는 확실한 홍과장, 같이 일을 하면 좋을 스타일이다. 다만 내가 일을 아주 잘한다는 전제하에.
약간 태생적으로 멋있어 보이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는데 이솜이 그런 것 같다. 멋있는 역할이 참 잘 어울린다.
박혜수는 이 영화에서 동글동글 귀여웠는데 그 이후에 너무 시끄러운 일들이 많아서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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