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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라우스 (Klaus_ 2019)

by 저녁그림자 2021. 7. 11.
A True Selfless act always sparks another one.

감독: 세르지오 파블로스

사랑스러운 산타이야기

알 수 없는 넷플릭스 추천에 한여름에 보게 된 산타 이야기.

이토록 사랑스러운 산타이야기라니.

작년 73회 영국 아카데미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그 외에도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산타가 순록들 몇 마리와 함께 혼자 일하는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면 이 영화를 보라.

제스퍼와 알바, 그리고 마르구네 부족 사람들까지.. 산타는 고독한 노동자가 아니다.

사랑스러운 그림체

질문에 답하는 영화

왜 산타는 순록을 타고 다닐까? 그것도 날아서? 왜 편지를 보내면 장난감을 선물로 줄까?

왜 굴뚝으로 들어오는 걸까? 쿠키를 진짜 좋아하나?

어떻게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 아는 걸까? 그리고 왜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줄까?

한 번이라도 궁금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라.

이 모든 궁금증에 답을 해줄 것이다.

때로는 답이 없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에는 앙숙인 두 가문이 있다.

엘링보 가문과 크럼 가문은 끊임없이 싸우는데 도대체 이들은 왜 싸우는 걸까?

그냥 싸운다. 두 가문의 어른들은 '왜'냐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대신 그들이 싸워온 역사를 보여준다. 그것이 이유다.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늘 그래왔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일 뿐, 사실 그들도 현재는 특별히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why'로 물었을 때 'because'로 대답하지 못하고 'have been'을 보여주는 건 그런 이유다. 요즘 토익 part2처럼.

어른들의 반목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이들에게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이들은 이유를 모르는 채 반대 가문의 아이를 미워하도록 교육받고, 어울리지 못하도록 단속 당하고, 학교도 가지 못한다.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글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편지를 쓸 수 없다.

두 가문의 싸움으로 이 마을은 거의 폐허에 가깝다.

 

선한 영향력

이 두 가문처럼 이유도 모르고 반목하는 집단은 현실에 너무나 많다. 한때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반목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새 이유는 필요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유치하게 편가르기를 하고 쟤네집 애랑은 놀지 말라며 우리 집 아이를 야단치는 비슷한 상황을 우리는 정치 뉴스에서도 보고, 사회 뉴스에서도 보고, 직장에서도 보고, 동네에서도 목격한다. 너무 흔하게.

 

그런 이들에게 영화는 반대로 질문을 한다.

공공의 적을 위해 악수를 할 수도 있는 사이이지 않냐고, 굳이 싸울 필요가 있느냐고, 파이를 선물하고 잼으로 답례하고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만약 누군가 진정 선한 행동 하나를 할 수 있다면.

"진짜 선한 행동은 다른 행동을 촉발한다."고 영화는 아주 대놓고 이야기한다.

영화의 주제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될 수 있겠다.

답을 찾아야 하는 남자

이 마을에 편지 6000통을 배달해야 하는 불가능한 임무를 가지고 한 남자가 찾아온다.

서로 인사도 하지 않는 사람들만 사는 마을에서, 아이들의 대다수는 글도 쓸 줄 모르는데 그들에게 어떻게든 편지 6000통을 쓰게 만들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남자는 그래야 이 마을을 탈출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게 만들 방법을 찾기 위한 이 남자의 고군분투는 아내를 잃고 산속에 은둔한 장난감 장인 클라우스를 찾아내고, 그의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웃음이 되고, 아이들의 웃음은 다시 클라우스에게 희망이 되고, 그의 희망은 마을에도 조금씩 조금씩 전파가 되기 시작한다. 편지를 써야 하는 아이들은 글을 배우기 위해 학교의 문을 두드리고 학교가 문을 열면서 아이들은 어느 가문의 아이가 아니라 같은 학교 친구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이 참 좋다.

클라우스가 작별인사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가 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년에 한 번 클라우스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제스퍼를 찾아오고 어떻게 된 건지 이해를 못하면서도 그를 기다리며 제스퍼는 쿠키를 준비한다, 그가 쿠키를 좋아한다면서. 그런데 쿠키는 사실 클라우스가 좋아한 게 아니라 본인이 집어먹고 다녀서 그런 소문이 난 건데 관객들이 모두 아는 걸 본인은 모르는 게 좋다.

산타클로스 얘기에는 어쨌든 신비한 구석이 필요한 법이니까.

밑에 빨간 모자 쓴 쪼그만 아이가 마르구.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

▷ 펌킨과 올라프가 결혼하며 한 편의 로미오와 줄리엣 서사를 완성하는데 두 역할은 한 사람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한 몸처럼 잘 살 모양인가 보다.

 

▷ 포기하지 않는 귀여운 마르구를 빼놓을 수 없다. 말이 안 통해도 괜찮고, 여러번 거절 당해도 좌절하지 않는다.

세상이 빡빡해질수록 갖기 힘든 태도이다. 세상이 닫힐수록 우리는 나약해지기 마련이니까. 내 앞에서 쾅! 닫힌 문을 보고도 다음날, 그 다음날 상처받지 않고 다시 그 자리에 찾아갈 수 있는 용기가 내게는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니, 일단 최초에 언어의 장벽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걸 구하러 갈 용기가 있을까?

결국 진심은 통할 것을 안다고 해도 그 '언젠가'가 너무 멀게 느껴져 지금의 나를 독려하지 못할 때 나는 쉽게 포기하고 뒤에 후회한다. 마르구만큼 귀엽지 않아도, 그 자리에 같은 시간에 앉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심이 통할 것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 산타는 외롭지 않다. 그 마을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으므로.

나도 외롭지 않다. 나 자신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니까. 이른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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